장재영 820일 만에 데뷔 첫 승 ‘결실’
장재영 820일 만에 데뷔 첫 승 ‘결실’
“어떻게 보면 별 것 아닌 기록인데 그 전에 제가 너무 못해서…”
키움 히어로즈 우완 투수 장재영(21)이 구단 유튜브를 통해 데뷔 첫 승 소감이다.
하지만 그 별 것 아닌 기록에 키움 구성원 모두가 한마음으로 기뻐했고, 그만한 이유가 있었다.
장재영은 5일 서울 고척스카이돔에서 열린 NC 다이노스와 2023 신한은행 SOL KBO리그 정규시즌 홈경기에서
선발 투수로 나와 5⅓이닝 2피안타 4사사구 7탈삼진 무실점으로 키움의 2-0 승리를 이끌었다.
특유의 빠른 직구를 앞세운 피칭이었다. 이날 장재영은 위력적인 투구로 개인 한 경기 최다 투구 수를 기록했다.
최고 시속 154㎞의 포심 패스트볼(70구), 슬라이더(15구), 커브(7구) 등 총 92개를 던져 개인 한 경기 최다 이닝과 탈삼진 기록도 경신했다.
2021년 4월 6일 고척 KIA 타이거즈전 이후 820일 만에 달성한 시즌 첫 승이다.
갈산초-신월중-덕수고를 졸업한 장재영은 2021년 신인드래프트 1차 지명으로 키움에 입단했다.
덕수고 시절부터 시속 150㎞ 중반의 빠른 공과 낙차 큰 커브를 구사해 메이저리그 팀들의 관심을 받을 정도였으나, 생각보다 성장통이 컸다.
제구가 문제였다. 지난해까지 33경기 평균자책점 8.53을 기록했는데 31⅔이닝을 소화하면서 사사구가 35개(31볼넷 4몸에 맞는 볼)로 이닝보다 많았다.
그러나 키움도 쉽게 포기할 수 없었다. 장재영은 같은 기간 사사구만큼이나 삼진(33개)도 많이 잡아냈다.
훈련 때는 프로 선수 출신들이 즐비한 코치진조차 “살벌하다”며 깜짝 놀랄 정도로 위력적인 공을 뿌렸다.
구단에서는 투구 메커니즘의 문제보다는 심리적인 문제가 더 크다고 봤다.
2021년 마무리캠프부터 송신영(47) 당시 1군 투수코치가 일대일 전담마크를 하며 장재영 멘탈 관리에 나섰다.
1급 심리상담사 자격을 지닌 홍원기(50) 감독은 장재영에게 부정적인 말보다 긍정적인 말을 앞세워 지도했다. 투·타 기둥 안우진(24)과 이정후(25)는 장재영의 멘토가 됐다.
1년여에 걸친 구성원 모두의 노력은 지난 겨울 호주 질롱코리아 경험을 통해 꽃을 피웠다.
키움은 질롱코리아에 있을 동안 투·타 겸업을 제의했고, 투수로 성공할 생각밖에 없던 장재영도 타석에서의 경험을 통해 자신의 공이 어떻게 보일 수 있는지 체감했다.
적극적으로 달려드는 외국인 타자들의 모습도 자신의 공에 확신을 갖는 데 큰 도움을 줬다.
시작한 2023시즌 초반은 크게 달라 보이지 않았다
선발 투수로 출전한 4월 2경기에서 5개의 볼넷을 내줬고 퓨처스리그로 내려갔다. 포기하지 않았다.
퓨처스리그에서도 선발 수업을 꾸준히 받고 다시 올라온 6월, 마운드에서 결과로 나타나기 시작했다.
위력적이거나 임팩트가 있는 것은 아니었다. 3이닝씩 소화하면서 최고 시속 155㎞의 강속구보단 제구에 초점을 맞춘 모습이 역력했다.
하지만 볼넷 수는 경기당 1~2개로 현저하게 줄었고 차츰 이닝도 늘어났다. 지난달 23일 고척 두산 베어스전에는 데뷔 후 처음으로 5이닝 1실점으로 승리 투수 요건도 갖췄다.
첫 승까지 딱 한 발짝만 더 나아가면 되는 상황. 상대 선발 투수는 13경기 11승 1패 평균자책점 1.61로 리그 에이스로 평가받는 에릭 페디(30)였다.
승리를 따내기 어려운 상대였지만, 페디 못지않은 피칭으로 팽팽한 승부를 이어갔다.
1회 삼자범퇴로 시작한 장재영은 2회 권희동에게 좌전 안타, 제이슨 마틴에게 볼넷을 내주며 첫 위기에 몰렸다. 이때부터 이전과 다른 모습을 보여주기 시작했다.
시속 130㎞ 초반의 슬라이더를 섞어 윤형준을 헛스윙 삼진 처리하더니 천재환에게도 같은 방식으로 2연속 헛스윙 삼진을 유도했다.
박세혁과 승부에서는 직구로만 스트라이크 카운트를 잡다가 4구째 몸쪽으로 뚝 떨어지는 커브로 루킹 삼진을 잡아냈다.
수비 도움도 있었다. 3회 김주원의 볼넷, 손아섭의 중전 안타로 맞이한 위기에서 장재영은 자신에게 오는 서호철의 땅볼 타구를 본능적으로 잡았다.
곧장 2루로 뿌린 송구가 크게 빠져 나가 악송구가 될 뻔했으나, 2루수 김혜성이 잡아 병살타로 연결했다.
박민우와 승부에서는 2회 박세혁 때와 마찬가지로 직구로 스트라이크를 잡은 뒤 몸쪽 떨어지는 변화구(슬라이더)로 헛스윙을 유도해 이닝을 끝냈다.
이후에는 순탄했다. 4회 김웅빈의 2타점 적시타가 터졌고 장재영은 5회를 또 한 번 삼자범퇴 처리하며 첫 승 요건을 갖췄다.
6회 마운드를 내려온 그의 뒤를 양현(1⅔이닝)-김재웅(1이닝)-임창민(1이닝)이 무실점으로 막아냈고 그렇게 장재영 820일 만에 데뷔 첫 승 을 따냈다.
키움 더그아웃은 9회 아웃 카운트가 하나씩 늘어날 때마다 장재영에게 힐끗힐끗 시선이 쏠렸다.
수훈 선수 인터뷰를 하는 동안에는 축하의 물 세례를 많이 해본 팀답지 않게 허둥대는 선수들의 모습도 보였다.
첫 승을 향한 장재영의 노력을 잘 아는 선수들이기에 이번 축하에도 누구보다 진심이었다.
동료들의 그 마음을 장재영도 모를리 없다. 경기 후 그는 구단 유튜브를 통해 “상대 투수(페디)가 정말 좋은 투수이기 때문에 사실 승리는 기대 안 했다.
최소 실점을 하자는 생각으로 경기에 임했다”면서 “어떻게 보면 별 것 아닌 기록인데 그 전에 제가 너무 못했다.
이제 팀에 도움이 된 것 같아 거기에 되게 만족한 것 같다”고 활짝 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