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9년 만에 열리는 베트남전 아무리 따져도 실익이 없다
59년 만에 열리는 베트남전 아무리 따져도 실익이 없다
유럽파들은 수천㎞를 날아왔다. 아시안게임 멤버들도 쉬지도 못한 채 소집됐다.
파이널 라운드를 앞둔 K리거들도 지칠 대로 지친 건 마찬가지다.
이처럼 ‘최정예’를 모아놓고 치르는 평가전 상대는, 베트남이다.
동남아 팀을 국내로 초청해 평가전을 치르는 건 무려 32년 만이다.
평가전 추진 단계부터 제기됐던 ‘누구를, 무엇을 위한 평가전인가’에 대해 의문만 점점 커지고 있다.
아무리 따져도 실익이 없다는 우려는 베트남의 중국전 패배 소식과 함께 현실이 됐다.
베트남은 지난 10일 중국 다롄에서 열린 중국과 평가전에서 0-2로 완패했다.
국제축구연맹(FIFA) 랭킹은 베트남이 95위, 중국은 80위다.
중립지역에서 난타전 끝에 중국에 2-3으로 아쉽게 지고, 홈에서는 3-1로 완승을 거뒀던 박항서 감독 시절은 과거 이야기다.
지금 베트남의 사령탑은 2002년 한·일 월드컵 당시 일본을 이끌었던 필립 트루시에(프랑스)다.
한국전에 대비해 로테이션을 가동한 것도 아니었다.
도훙중, 당반람, 응우옌 반토안 등 어느덧 익숙한 선수들도 선발로 나섰다.
그나마 선발 중 3명이 A매치 경험이 5경기가 안 되는 선수들일뿐, 나머지는 주축 멤버들이 자리를 채웠다.
그런데도 중국에 완패를 당한 전력이 고스란히 한국으로 향한다.
우즈베키스탄과의 평가전은 비공식 A매치고, 오는 17일 수원월드컵경기장에서 한국과 베트남에서 평가전이 열린다.
국내에서 열리는 A매치가 동남아 팀과 펼쳐지는 건 1991년 인도네시아전 이후 처음이다.
심지어 베트남전은 1964년 효창에서 열린 이후 무려 59년 만이다.
30년 넘게 국내에서 동남아 팀들과 평가전이 열리지 않았던 이유는 명확하다.
유럽파 등 최정예를 소집해 평가전을 치를 수 있는 몇 안 되는 기회를, 굳이 동남아 팀과 치러 얻을 수 있는 이득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베트남과 평가전을 추진한다는 소식이 전해졌을 때부터 비판 여론이 컸던 것도 같은 이유였는데, 대한축구협회(KFA)는 그대로 평가전을 확정했다.
유럽이나 남미 등 다른 대륙은 저마다 일정이 있으니 상대를 찾는 게 쉽지 않다는 게 KFA의 설명이다.
그러나 가까운 일본축구협회(JFA)는 일찌감치 북중미 신흥강호 캐나다와 평가전을 성사시켰다.
한국이 9월 평가전 상대들조차 확정하지 못했던 시기, JFA는 발 빠르게 움직여 한 달 뒤 평가전 일정까지 모두 확정했다.
KFA 행정력의 현주소를 보여주는 대목인데, 공교롭게도 캐나다의 10월 평가전 일정은 일본 원정 한 경기가 유일하다.
그나마 KFA는 다음 달부터 시작되는 월드컵 예선과 아시안컵 등에 대비하겠다는 의미를 애써 담았지만,
한국은 당장 11월 월드컵 예선 첫 경기부터 싱가포르(FIFA 랭킹 157위) 또는 괌(201위)과의 격돌을 시작으로 아시아 약팀들과 계속 맞대결을 치러야 한다.
애써 대비할 필요도 없이 전력 차가 큰 맞대결이 대부분인 데다, 피하고 싶어도 계속 아시아 팀들과 격돌하는 여정 속 적응력도 자연스레 커질 수 있다.
지난 30년 넘게 동남아 팀과 국내 평가전이 없었던 것, 그동안 최대한 아시아가 아닌 다른 대륙의 팀들과 평가전이 열렸던 것도 같은 이유에서다.
더구나 중국에 완패를 당하는 전력의 팀이라면 더더욱 평가전 의미는 퇴색될 수밖에 없다.
이처럼 베트남과 평가전을 치르는 것도 이해하기 어려운데, 설상가상 위르겐 클린스만(독일) 감독은 베트남전조차 최정예를 내보낼 분위기다.
평소 기회를 받지 못했던 선수들을 활용하는 게 그나마 작은 의미라도 찾을 수 있는 유일한 길일 텐데,
클린스만 감독은 “로테이션은 없다”며 선을 그었다.
튀니지·베트남전에 대비해 단 한 명의 새로운 선수조차 없이 최정예를 소집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부임 후 5경기 연속 무승(3무 2패)이라는 불명예 기록 등 결과에 대한 압박을 느끼고 있으니,
감독 입장에선 오히려 반가울 대진일 수 있다. 베트남전 자체가 클린스만 감독의 승리를 위해 추진된 것
아니냐는 팬들의 ‘비아냥’이 나오는 것도 그런 이유에서다. 사실 따지고 보면 허울뿐인 승리 외엔 뚜렷하게 남을 것도 없다.
그런 평가전을 성사시킨 KFA도, 그런 평가전에 최정예라도 내세울 태세인 클린스만 감독도 안타깝기만 하다.